책책책 책속에서/시詩는 11

첫사랑 - 류시화

이마에 난 흉터를 묻자 넌지붕에 올라갔다가별에 부딪친 상처라고 했다 어떤 날은 내가 사다리를 타고그 별로 올라가곤 했다내가 시인의 사고방식으로 사랑을 한다고넌 불평을 했다희망 없는 날을 견디기 위해서라고난 다만 말하고 싶었다 어떤 날은 그리움이 너무 커서신문처럼 접을 수도 없었다 누가 그걸 옛 수첩에다 적어 놓은 걸까그 지붕 위의별들처럼어떤 것이 그리울수록 그리운 만큼거리를 갖고 그냥 바라봐야 한다는 걸 첫사랑 - 류시화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 백창우

이렇게 아무런 꿈도 없이 살아갈 수는 없지가문 가슴에 어듭고 막막한 가슴에푸른 하늘 열릴 날이 있을거야고운 아침 맞을 날이 있을거야길이 없다고,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그대, 그 자리에 머물지 말렴길이 끝나는 곳에 길은 다시 시작되고그 길 위로 희망의 별 오를 테니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 백창우

험난함이 내 삶의 거름이 되어 - 류시화

기쁨이라는 것은 언제나 잠시뿐 돌아서고 나면 험난한 구비가 다시 펼쳐져 있을 이 인생의 길 삶이 막막함으로 다가와 주체할 수 없어 울적할 때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나 구석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자신의 존재가 한낱 가랑잎처럼 팔랑거릴 때 그러나 그럴 때 일수록 나는 더욱 소망한다. 그것들이 내 삶의 거름이 되어 화사한 꽃밭을 일구어 낼 수 있기를 나중에 알찬 열매만 맺을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꽃이 아니라고 슬퍼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험난함이 내 삶의 거름이 되어 - 류시화

가시나무 - 하덕규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당신의 쉴곳 없네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내 속엔 내가 이길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바람만 불면 그메마른 가지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쉴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당신의 쉴 곳 없네 가시나무 - 하덕규

가끔은 비 오는 간이역에서 은사시나무가 되고 싶었다. - 이정하

햇볕은 싫습니다.그대가 오는 길목을 오래 바라볼 수 없으므로,비에 젖으며 난 가끔은비 오는 간이역에서 은사시나무가 되고 싶었습니다.비에 젖을수록 오히려 생기 넘치는 은사시나무,그 은사시나무의 푸르름으로 그대의 가슴에한 점 나뭇잎으로 찍혀 있고 싶었습니다.어서 오세요, 그대.비 오는 날이라도 상관없어요.아무런 연락 없이 갑자기 오실 땐햇볕 좋은 날보다 비 오는 날이 제격이지요.그대의 젖은 어깨, 그대의 지친 마음을기대게 해주는 은사시나무. 비 오는 간이역,그리고 젖은 기적소리.스쳐 지나가는 급행열차는 싫습니다.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지나가버려차창 너머 그대와 닮은 사람 하나 찾을 수 없는 까닭입니다.비에 젖으며 난 가끔은 비 오는 간이역에서그대처럼 더디게 오는 완행열차,그 열차를 기다리는..